1백세 넘어도 매일출근 합니다
1백세 넘어도 매일출근 합니다
  • 전대식 기자
  • 승인 2018.05.14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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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계 최고령 유동호 작가의 건강비결
요즘처럼 어려운 생활에도 “자기 몸을 위해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오래 사니까, 사진을 하면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나처럼 건강하니까, 사진 열심히 하라” 고 격려하는 유동호 작가
요즘처럼 어려운 생활에도 “자기 몸을 위해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오래 사니까, 사진을 하면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나처럼 건강하니까, 사진 열심히 하라” 고 격려하는 유동호 작가

충무로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올해 103세 유동호(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선생은 근면과 절제, 두 가지를 잘 다스리며 살아온 사진인이다.

충무로역 티마크호텔 건너편에 있는 충무로 돼지갈비 집은 1980년대부터 사진인과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단골식당, 36년이 지났지만 전통은 변함이 없어 일본, 중국 등 외국 여행객들의 단골 음식점으로도 인정받았다.

지난 10일 조금 이른 점심시간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유 작가가 한적한 구석자리에 앉자마자 식당종업원이 빈 접시에 반찬 몇 가지를 올려 작가의 식탁에 놓았다. 용기마다 찬을 담은 다른 식탁과는 달리 반찬을 남기지 않으려는 작가의 배려로 보였다. 종업원이 식탁을 몇 번이나 보며 챙기는 모습에서 노작가의 단골식당임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기자는 식사를 대충 마치고 일어나 노작가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유 선생님 참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요즘도 충무로 나오시고 아주 건강해보이세요."

유 작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요, 송파 집에서 전철을 타고 매일 충무로 포토 랜드(사진현상소) 나와요, 안 나오면 또 와서 찿을까봐~"

귀가 조금 안 좋은 듯 했지만 치아도 건강하고 명함을 드리자 안경을 쓰지 않고 볼 정도로 시력 또한 좋았다.

“선생님 어떻게 이런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지요.”

1백세가 지난 노작가는 허리를 더욱 꼿꼿이 세우며 “욕심내지 말자, 조금만 먹는데 골고루 음식을 가리면 안돼요. 많이 먹으면 안돼요. 살이 찌는 사람은 오래 못가요. 살이 많이 찐 사람은 나이 60이 넘으면 나가떨어져요.”

노 작가의 첫 대답은 식사습관이었다. "먹는 게 아주 중요해요, 골고루 조금씩 잘 먹어야 되요."

191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그림을 잘 그렸던 유 작가는 미대 진학하려 했으나 한의사인 부친이 간판장이가 되려느냐며 만류해 일본 동경대 체육과에 입학했다. 해방이 되자 부인과 함께 남하해 선린상고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했고 이후 덕수상고, 용산고등학교에서 30여 년간 교편생활을 하며 국내 최초의 사진동아리 모임인 용산사우회를 만들었다. 2남 2녀를 둔 부인은 2014년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식사 습관 외에 장수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많이 움직여야 돼요, 나는 95세까지 전철에 앉지 않고 계속서서 다녔어, 앉으면 느긋할까봐, 계속 움직여야 돼.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점은 내가 아프리카 안 갔으면 아마 지금도 날아다닐 거여.”

-말씀해 주시지요.

“95세 나이에 멀리 동아프리카 촬영을 간적이 있었어요. 케냐 나쿠루 호수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수십만 마리의 플라밍고(FIamingo,홍학)를 보곤 감동해 보다 상세히 촬영하러 안내원들과 말이 안 통하니까 그냥 뛰어 들어가는데 갑자가 몸이 쑥 빠지는거에요. 늪지인줄 알았는데 인분 구덩이었던 거에요.. 갑자기 순식간이라 이러다 죽는구나. 했는데 마침 달려온 원주민의 오른손 새끼손가락 마디를 잡고 간신히 나왔어요.

우선 급한 데로 사진을 찍고 나와 물에 씻는데 하얀 살이 새까맣게 변해있었어요. 호텔로 와서 다시 씻고 아프진 않는데 3개월 되니 경련이 나는 거에요 몸이 막돌아가고 약을 먹고 병원에 다녀도 소용없고 그때부터 몸이 말을 안 듣는거에요

당시만 해도 60kg 카메라 장비를 짊어지고 설악산, 지리산 돌아다니니 ‘할아버지 이걸 메고 어떻게 산을 오르십니까..’하며 젊은 사람들도 다 놀랐어요.”

케냐에서의 사고 이후로 유 작가의 활동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작가는 2015년엔 유동호 백세사진전(형형색색 우리강산사계,갤러리 이룸)을 열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경력 76년간 13회의 개인전을 열정도로 왕성한 사진 활동을 해온 작가에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전문 사진인들의 애로 사항을 들어보았다.

유 작가의 지갑속에 있는 빛바랜 기능사 자격증, 사진전문인들에게 1,2,3급 기능사 자격을 부여해 인권신장 했던 일을 생애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들었다.
유 작가의 지갑속에 있는 빛바랜 기능사 자격증, 사진전문인들에게 1,2,3급 기능사 자격을 부여해 인권신장 했던 일을 생애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들었다.

 

-유 선생님이 생애 가장 보람 있던 일중 하나가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창립했던 일과 전문사진인들이 노동청(현 고용노동부)으로부터 1,2,3급 기능사 자격을 부여해 사진인들에 인권신장을 위해 힘써오셨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진업계뿐만 아니라 전문 사진인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사진 전시 한번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아나요? 사진 만들어야지, 액자 만들어야지, 팸플릿도 만들어야지, 장소를 구해야지, 또 책도 나와야하는데 책을 누가 돈 주고 사나요? 온 사람에게는 공짜로 다 주어야지요.”

그나마 요즘엔 사진도 잘 안 팔려요. 옛날에는 내가 사진 한 점 팔면 삼십만 원 받았어요. 그럼 독일제 콘텍스 카메라 이십팔만 오천 원 주고 사고 그럼 만 오천 원 남잖아요. 동료사진인들 밥 사줬어요. 그러니 사진하는 분들 힘이 들어요. 그렇더라도 인생을 살살 가는 거지,”

기자는 식사 중간에 시간을 빼앗아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식사시간이 길면 장수 한다는데 20여분 정도 기다리니 유 작가가 식당을 나왔다. 유 작가의 식사시간은 50여분이 걸린 셈이다.

그의 걷는 뒷모습이 백세노인의 모습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작가는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좀 전 건넨 기자의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보았다. 식당주인이 밥값을 앞선 사람이 계산했다고 하자 밥 사는 기자가 기특해서일까? 다시 인사를 드리자 더욱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선생님 식당 안이 조금 시끄러워 한 말씀 더 청해들으려 기다렸습니다. 모처럼 충무로 일대를 살펴보니 유명했던 현상소나 사진점들도 많이 줄고 사진인들도 요즘 힘겨워하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에 경제가 힘들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사진하는 사람이 생기는 게 없으니까 자꾸 죽어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사진하려면 나가야 하는데 차비가 들지 숙박비가 들지 그러니까 사진 인구가 자꾸 줄어들어요. 다 경제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여러분, 자기 몸을 위해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사진을 하면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나처럼 건강하니까, 같이 오래살고 인생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사진 열심 하세요.”

노 사진작가는 사람들 틈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히 사진 활동을 하는 그의 긴 삶이 황혼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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